러너의 HRV: 데이터로 뛰는 사람들
아침 HRV로 오늘의 훈련 강도를 결정하는 법. 엘리트 선수들이 쓰는 방법, 이제 당신도.
2007년, 핀란드 위베스퀼레 대학교. 운동생리학자 아리 키비니에미(Ari Kiviniemi)는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중년 남성 운동선수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전통적인 방식, 즉 정해진 훈련 계획을 따랐다. "월요일은 인터벌, 수요일은 템포런, 금요일은 롱런."
다른 그룹은 달랐다. 매일 아침 HRV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훈련 강도를 조절했다. HRV가 높으면 강하게, 낮으면 가볍게.
4주 후, 결과가 나왔다.
HRV 기반으로 훈련한 그룹의 심폐 기능 향상 폭이 더 컸다. 그리고 과훈련으로 지치는 사람도 적었다.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몸이 준비됐을 때 강하게 훈련하고, 피곤할 때 쉬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이렇게 훈련하지 않는다. "오늘 수요일이니까 인터벌." 달력을 보고 뛴다. 몸 상태는 무시하고.
내 몸은 달력을 보지 않는다. 어제 야근했는지, 그제 술 마셨는지, 지난주에 훈련을 얼마나 했는지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진다. HRV는 그걸 숫자로 보여준다.
새벽 5시 30분의 딜레마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템포런 10km를 계획한 날이다. 그런데 어젯밤 회식이 있었다. 맥주 두 잔에 소주 한 잔. 집에 들어온 건 밤 11시. 수면은 다섯 시간 반.
이불 속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뛰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리해서 뛰면 내일 더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쉬자니 훈련 흐름이 끊길 것 같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고민.
여기 재미있는 숫자가 하나 있다. 건강 앱을 열어 HRV를 확인한다. 38ms. 내 기준선이 48ms였으니까 약 20% 하락이다. 수면은 평소의 70%. 솔직히 몸도 무겁다.
이 상황, 명확한 빨간불이다.
현명한 선택은? 템포런 포기. 아주 가벼운 조깅 3-4km로 대체하거나, 아예 쉬는 것. 오늘 잘 쉬면 내일은 회복돼 있을 것이다. 그때 템포런 하면 된다. 하루 미뤄질 뿐이다.
심장은 기계처럼 뛰지 않는다
HRV가 뭔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
심장이 1초에 한 번씩 딱딱딱 뛴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0.8초, 1.1초, 0.9초... 이렇게 간격이 계속 바뀐다. 이 변화를 측정한 게 HRV(Heart Rate Variability), 심박변이도다.
재미있는 건 이 변화가 클수록 좋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도로 상황에 따라 속도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차가 좋은 차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심장 박동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건,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HRV가 낮으면? 심장이 거의 일정하게 뛰고 있다는 것이다. 몸이 이미 뭔가에 대응하느라 바쁘다는 신호다. 수면 부족일 수도, 훈련 피로일 수도, 직장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HRV는 내 몸이 지금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숫자로 보여준다.
왜 하필 아침인가
HRV는 하루 종일 변한다. 커피 마시면 바뀌고, 계단 오르면 바뀌고, 점심 먹으면 또 바뀐다. 회의에서 스트레스 받으면 또 바뀐다.
그래서 항상 비슷한 조건에서 측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교가 된다.
아침이 최적인 이유가 있다. 밤새 6-8시간 잤고, 아직 카페인이나 음식을 안 먹었고, 신체 활동도 안 했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최소화된 시간이다.
좋은 소식은 요즘 이게 자동화됐다는 것이다. 애플워치 차고 자면 수면 중 HRV를 자동으로 기록해준다. 오우라 링이나 가민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눈 뜨면 데이터가 이미 준비되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심박 측정 벨트를 차고 조용히 누워서 5분간 측정해야 했다. 지금은 그냥 자면 된다.
숫자를 어떻게 읽을까
"오늘 45ms네. 이게 좋은 건가?"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
HRV 절대값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스무 살 운동선수는 60ms가 평균일 수 있고, 마흔 살 직장인은 35ms가 평균일 수 있다. 둘 다 정상이다.
중요한 건 나의 평균 대비 오늘이 어떤지다.
최근 3주(21일)간의 평균을 기준선으로 잡는다. 그리고 오늘이 그 기준선에서 몇 퍼센트 벗어났는지를 본다.
내 기준선이 50ms인데 오늘 45ms라면? 10% 하락이다. 이 퍼센트가 핵심 지표다.
왜 21일(3주)일까? 너무 짧으면 일시적인 변동에 흔들린다. 너무 길면 체력 변화를 반영 못 한다. 3주가 적당한 균형점이다.
신호등 시스템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오늘 훈련을 결정하는 법.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신호등 시스템이다.
초록불: 계획대로 GO
- HRV가 기준선에서 3% 이내 변화
- 수면을 평소의 90% 이상 확보
- 최근 3일간 고강도 훈련이 하루 이하
이런 날은 계획대로 밀어붙여도 된다. 템포런 계획했으면 템포런. 인터벌 계획했으면 인터벌. 오히려 이런 날 너무 쉬면 아깝다.
노란불: 강도 조절 CAUTION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노란불이다.
- HRV가 기준선 대비 3~10% 하락
- 수면이 6-7시간으로 부족
- 최근에 고강도 훈련을 이틀 연속
노란불이라고 쉬라는 게 아니다. 강도를 조절하라는 것이다. 템포런 대신 이지런. 인터벌 대신 기술 훈련. 무리하지 않으면서 움직임은 유지한다.
빨간불: 회복 우선 STOP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빨간불이다.
- HRV가 기준선 대비 10% 이상 하락이 이틀 연속
- 수면이 평소의 80% 미만 + 몸도 무겁게 느껴짐
빨간불일 때 무리하면? 단기적으로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날이 쌓이면 문제가 생긴다. 만성 피로. 수행 능력 저하. 심하면 부상.
마라톤 준비 중에 2주간 부상으로 쉬는 것보다, 하루 이틀 가볍게 쉬는 게 훨씬 낫다.
반대 상황도 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장거리 롱런 20km 계획. 어젯밤은 일찍 자서 8시간 꿀잠. HRV를 확인하니 52ms. 기준선 48ms보다 오히려 높다. 몸도 가볍게 느껴진다.
완벽한 초록불이다.
계획대로 20km 달린다. 오히려 이런 날 너무 쉬면, 좋은 컨디션을 활용 못 한 셈이다.
2021년에 사이클 선수들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HRV 기반 훈련이 전통적인 주기화 훈련만큼 효과적이었는데, 개인 맞춤형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월요일이니까 인터벌, 수요일이니까 템포런. 이런 식으로 요일에 맞춰 훈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내 몸은 달력을 보지 않는다.
데이터가 쌓이면 패턴이 보인다
HRV를 한 달, 두 달, 일 년 측정하다 보면 흥미로운 패턴들이 보인다.
술과 HRV. 술 마신 다음 날 HRV가 떨어지는 건 거의 예외가 없다. 맥주 두세 잔도 영향이 있다. 많이 마시면 이틀, 사흘까지 영향이 간다. 알코올이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면 중에도 교감신경이 활성화된 상태가 유지된다.
재미있는 건, 이 패턴을 알고 나면 음주량을 스스로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일 중요한 훈련 있으니까 오늘은 한 잔만." 숫자가 행동을 바꾼다.
수면 부족의 누적. 하루 잠 적게 자는 건 괜찮다. 다음 날 잘 자면 회복된다. 그런데 이틀, 사흘 연속되면 달라진다. 첫날은 괜찮다가, 둘째 날부터 서서히 떨어지고, 셋째 날은 확 낮아진다. 그리고 이렇게 떨어진 HRV는 하루 잘 잔다고 바로 안 돌아온다. 며칠 걸린다.
"평일에 잠 줄이고 주말에 몰아 자면 되지"라고 생각하는데, HRV 데이터는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훈련과 회복의 리듬. 고강도 훈련을 하면 HRV가 떨어진다. 정상이다. 몸이 운동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것이다. 적절히 쉬면 다시 올라온다. 이 오르내림이 바로 훈련 적응 과정이다.
문제는 HRV가 떨어진 채로 오래 안 올라올 때다. 훈련량이 회복 능력을 초과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계획을 수정해서 회복 시간을 더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HRV가 너무 안정적이어서 거의 변화가 없다면? 훈련 자극이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다. 물론 레이스 직전 테이퍼링 기간이라면 안정적인 게 좋다. 하지만 기초 체력 쌓는 시기라면 약간의 변동이 있는 게 정상이다.
직장 스트레스도 영향을 미친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HRV에 나타난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거나, 팀에서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을 때 HRV가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시기에는 훈련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강도는 조절해야 한다. 고강도 인터벌보다는 편안한 페이스의 조깅이 좋다. 달리면서 머리 비우고, 돌아와서 샤워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린다.
핵심은 훈련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주 받는 질문들
"HRV는 낮은데 기분은 좋아요."
자주 있는 일이다. 특히 고강도 훈련 다음 날. 힘든 훈련 후에 교감신경이 활성화된 상태가 24-48시간 지속될 수 있다. 그래서 아침에 HRV는 떨어져 있는데, 아직 피로가 안 밀려온 것이다.
이럴 땐 가벼운 운동은 해도 된다. 대신 고강도는 피한다. 하루 이틀 지나면 HRV랑 컨디션이 맞아진다.
"반대로 HRV는 높은데 피곤해요."
이것도 가능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측정 오류일 수 있다. 수면 중에 손목 밴드가 느슨해지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또는 전날 아주 가벼운 운동을 오래 했거나, 명상을 했다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HRV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실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래서 HRV만 보면 안 된다. 수면 시간, 최근 훈련 부하, 주관적 느낌을 같이 본다.
"레이스 앞두고 있는데요?"
테이퍼링 기간에는 HRV가 서서히 올라가는 게 정상이다. 훈련량을 줄이니까 몸이 회복하는 것이다. 근데 테이퍼링인데도 HRV가 계속 떨어지거나 안 올라온다면? 훈련량을 더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레이스 당일 최상의 컨디션 만드는 게 목표다.
레이스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HRV가 높으면 좋은 신호다. 몸이 준비됐다는 것이다. 긴장이나 수면 부족으로 HRV가 떨어져 있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레이스 당일의 아드레날린이 많은 걸 보완해준다.
"기기마다 수치가 달라요."
정상이다. 애플워치에서는 50ms인데, 다른 앱으로 측정하면 30ms가 나올 수 있다. HRV 계산 방법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애플워치의 건강 앱은 보통 SDNN이라는 지표를 보여주고, 오우라 링은 RMSSD를 주로 보여준다. 계산 방식이 달라서 절대값이 다르게 나온다.
그래서 기기 간 절대값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같은 기기에서 측정한 나의 변화 추이다. 애플워치 쓰기로 했으면 계속 애플워치만 본다. 기기를 바꾸지 않는 게 일관된 데이터를 얻는 핵심이다.
내일 아침부터 해보자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첫 3일은 관찰만 한다. 애플워치 쓴다면 건강 앱에서 심박 변이도 항목을 즐겨찾기에 추가한다. 내일 아침부터 기상 직후에 확인해본다. 이런 식으로 메모해둔다.
- 11/25: HRV 48ms, 7시간 수면, 어제 가벼운 조깅
- 11/26: HRV 52ms, 7.5시간 수면, 어제 휴식
- 11/27: HRV 41ms, 5.5시간 수면, 어제 회식
며칠만 해도 패턴이 보인다. "아, 회식 다음 날은 확실히 떨어지네." "푹 자면 올라가는구나."
일주일 후에 첫 번째 실험을 한다. 어느 날 HRV가 10% 이상 떨어져 있으면, 계획한 훈련 강도를 20-30% 줄여본다. 그리고 다음 날 어떤지 확인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HRV가 실제로 내 몸 상태를 반영한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반대 실험도 해본다. HRV가 기준선보다 높고 컨디션도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강하게 훈련해본다. 아마 평소보다 훨씬 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직장인 러너들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새벽에 일어나 뛰고,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에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이 바쁜 일상 속에서 훈련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그 소중한 훈련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쓰고 싶은 것이다.
무리해서 부상당하고 몇 주를 쉬는 것보다, 적절히 강도를 조절하면서 꾸준히 달리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하프 마라톤이든 풀코스든, 결국 완주선을 통과하는 건 꾸준히 준비한 사람이다.
HRV는 그 여정에서 작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숫자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HRV는 참고 자료다.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린다. 숫자가 녹색인데 몸이 안 좋으면 쉬어도 된다. 숫자가 노란색인데 정말 뛰고 싶으면 가볍게 뛰어도 된다. 다만 그 결정을 내릴 때, HRV라는 추가 정보가 있으면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상 없이, 번아웃 없이, 꾸준히. 그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 아닌가?
내일 아침, 눈 뜨면 한번 확인해보자. 오늘 당신의 몸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참고 문헌
- Kiviniemi, A.M., et al. (2007). Endurance training guided individually by daily heart rate variability measurements.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 Bellenger, C.R., et al. (2016). Monitoring Athletic Training Status Through Autonomic Heart Rate Regulation. Sports Medicine.
- Javaloyes, A., et al. (2021). Training Prescription Guided by Heart Rate Variability vs. Block Periodization. Journal of Strength and Conditioning Research.
- Plews, D.J., et al. (2013). Heart rate variability in elite triathletes, is variation in variability the key to effective training?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