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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oholHRV Works Team

알콜과 HRV: 술 한 잔의 과학

알코올이 심장과 수면에 미치는 영향. 데이터가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과 현실적인 대처법.

2018년, 핀란드 연구팀이 수천 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평소처럼 생활하되, 손목에 심박 측정 기기를 차고 다니게 했다. 술을 마신 날과 마시지 않은 날의 데이터가 모였다. 결과는 명확했다.

소주 1잔 정도의 적은 양을 마셔도 그날 밤 심박변이도(HRV)가 9.3% 떨어졌다. 소주 반 병 정도면 24%. 한 병 이상이면 39.2%.

"적당히 마시면 괜찮다"는 말. 이 데이터 앞에서 무색해진다.


잔 것 같지 않은 잠

토요일 아침.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뜬다. 분명 8시간을 잤는데, 잔 것 같지가 않다. 머리가 묵직하고 몸이 천근만근이다.

아, 맞다. 어젯밤 회식이었지.

애플워치를 확인한다. 평소 48ms였던 HRV가 29ms로 떨어져 있다. 수면 점수는 62점. "회복 부족"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떠 있다.

이 경험, 익숙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술 한잔해야 잠이 잘 온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UC버클리 수면 과학자 매튜 워커(Matthew Walker)는 이 착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알코올은 진정제예요. 진정(sedation)은 수면이 아닙니다. 술을 마시면 대뇌피질을 끄는 거지, 잠을 자는 게 아니에요."

그는 알코올로 유도된 잠을 '가짜 수면(pseudosleep)'이라고 부른다. 회복이 안 되는 수면. 눈을 감고 있지만 몸은 쉬지 못하는 상태.

왜 그럴까? 알코올이 몸 안에서 벌이는 일을 들여다보자.


48시간 동안 몸에서 일어나는 일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졸려진다. 알코올이 진정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뇌가 멈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금세 잠이 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알코올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몸이 해독 모드로 전환한다. 간은 알코올을 독소로 인식하고 분해하느라 바쁘게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심장은 평소보다 빨리 뛰기 시작한다. 자율신경계는 휴식 모드가 아니라 스트레스 모드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오우라 링(Oura Ring)이 수백만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자.

  • 수면 시간이 평균 35분 감소했다.
  • 수면 효율이 2.2% 하락했다. (침대에 누워 있어도 잠을 못 잔 시간 증가)
  • 깊은 수면(Deep Sleep)이 최대 75% 감소했다.
  • REM 수면이 40% 감소했다.

깊은 수면은 몸의 물리적 회복을 담당한다. 근육이 수리되고, 면역 시스템이 강화되고,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간이다. REM 수면은 정신적 회복을 담당한다. 기억이 정리되고, 감정이 처리되고, 뇌의 노폐물이 청소되는 시간이다.

둘 다 망가진다.

8시간을 잤어도 실제로는 4시간밖에 못 잔 것과 같은 효과다. 아침에 "잔 것 같지 않다"는 느낌. 기분 탓이 아니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WHOOP이 보여준 충격적인 격차

미국의 한 기자가 자신의 WHOOP 데이터를 공개한 적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과 마신 날을 비교한 것이다.

좋은 밤 (금주):

  • HRV: 127ms
  • 회복 점수: 89%
  • 수면 시간: 9시간 이상

나쁜 밤 (음주):

  • HRV: 61ms
  • 회복 점수: 급락
  • 수면 시간: 5시간 미만

그는 이 격차를 "황당할 정도의 차이(a preposterous disparity)"라고 표현했다. 같은 사람, 같은 몸인데 술 하나로 이렇게 달라진다.

한 레딧 사용자의 고백도 인상적이다.

"나는 꽤 과음하는 편이에요. 일주일간 WHOOP을 차고 평소대로 마셨더니, 회복률이 25%를 넘은 적이 없더라고요. 수면 성과는 45% 수준이었고요. 수치가 쓰레기 같았어요."

스탠포드 신경과학자 앤드류 휴버만(Andrew Huberman)은 직접 확인해보라고 권한다.

"알코올이 숙면과 회복 능력을 망칠 수 있다는 걸 의심한다면, WHOOP을 차고 하루는 마시고 하루는 금주해보세요.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의 결론은 단호하다.

"알코올 데이터는 명확하다. 0이 가장 좋고, 주 2잔이 부정적 영향이 관찰되기 시작하는 최대치다."


회복에는 며칠이 걸릴까

가장 무서운 건, 영향이 하루만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WHOOP에서 대학생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한 번의 음주 영향이 4-5일간 지속됐다. 하루 마신 술이 거의 일주일 동안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개인 데이터를 모아보면 패턴이 보인다.

음주량다음날 HRV 변화완전 회복까지
맥주 1-2캔-12%1-2일
소주 반 병-24%2-3일
소주 1병+-38%3-5일

금요일 회식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면, 다음 주 수요일쯤 되어야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월요일 아침의 그 피로감. 금요일 회식 때문일 수 있다.


피터 아티아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장수 의학 전문가 피터 아티아(Peter Attia)는 그의 베스트셀러 《Outlive》에서 알코올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

"많은 역학 연구가 뭐라고 하든, 알코올은 어떤 용량에서도 건강에 좋지 않다. 마시지 말라는 게 아니라, 건강에 좋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는 거다."

그는 한 가지 더 짚는다.

"장수한 만성 음주자들은 술 '때문에' 오래 산 게 아니라, 술에도 '불구하고' 오래 산 것이다."

"적당히"는 없다. "덜 나쁘게"만 있을 뿐이다.

물론 아티아도 와인을 즐긴다. 다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트레이드오프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마신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서.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안다.


자율신경계에 무슨 일이 생기는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알코올이 정확히 우리 몸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첫 번째: 교감신경 활성화.

우리 몸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 싸울 때 쓰는 교감신경(긴장 모드)과, 쉴 때 쓰는 부교감신경(휴식 모드). HRV는 이 두 모드가 얼마나 균형 잡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술을 마시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몸 입장에서 알코올은 독소다. 해독해야 하니까 긴장 모드에 들어간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고, HRV는 떨어진다.

두 번째: 탈수.

술을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알코올이 이뇨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밤새 소변으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탈수 상태가 된다.

탈수가 되면 혈액이 끈적해진다. 심장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체온 조절도 어려워진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타는 듯 마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세 번째: 깊은 수면 파괴.

수면은 90분 주기로 여러 단계를 오간다. 깊은 수면(N3)은 밤의 전반부에 집중되고, REM 수면은 후반부에 집중된다. 알코올은 이 구조를 망가뜨린다.

잠들기 직전에 술을 마시면, 밤의 전반부에서 깊은 수면으로 들어가기 어려워진다.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후반부에는 REM 수면이 억제된다. 결국 둘 다 부족해진다.

매튜 워커는 덧붙인다.

"알코올은 꿈 수면(REM)을 차단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약물이에요. 저녁에 와인 한 잔만 마셔도 REM 수면이 줄어들 수 있어요."

REM 수면이 부족하면 다음 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나빠진다. 회식 다음 날 "왠지 짜증이 나고, 머리가 안 돌아가는" 이유다.


그래서 술을 끊으라는 건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술자리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는 즐거움도 있다. 중요한 건 알고 마시는 것이다.

어차피 마실 거라면, 덜 망가지는 법이 있다.

3-3-3 원칙:

첫 번째 3. 회식 3시간 전 식사. 공복에 술을 마시면 알코올 흡수가 빨라진다. 미리 밥을 먹어두자. 단백질과 지방이 있는 음식이 좋다. 흡수를 늦춰준다.

두 번째 3. 술 3잔 리미트. 어떤 술이든 3잔을 넘기지 않는다. 소주 3잔, 맥주 3캔, 와인 3잔. 이 정도면 HRV 하락을 15% 이내로 관리할 수 있다.

세 번째 3. 3일 회복 기간. 술을 마신 후 3일은 중요한 일을 피한다. 큰 프레젠테이션, 중요한 미팅, 체력이 필요한 일은 3일 뒤로 미룬다.

술자리 팁:

물과 번갈아 마시기. 술 한 잔, 물 한 잔. 같은 시간에 술을 절반만 마시게 된다. 탈수도 덜하다.

자정 전 마감. 늦게까지 마시면 술의 양도 늘고 수면 시간도 줄어든다. 일찍 끝내는 게 모든 면에서 이득이다.

첫 잔 이후 탄산수. 첫 잔은 같이 건배하고, 이후로는 탄산수를 주문한다. 잔에 뭔가 들어있으니 티도 안 난다. 알코올 섭취량을 80% 줄일 수 있다.


이미 마셔버렸다면

다음 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수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500ml. 점심 전까지 2L. 전해질 보충제나 코코넛 워터도 좋다. 이온 음료도 괜찮다.

주의할 점. 카페인은 피하자. 커피가 당기겠지만, 이미 탈수된 몸에 이뇨 작용을 더하는 것이다. 악화시킬 뿐이다.

가벼운 움직임.

완전히 쉬는 것보다 가볍게 움직이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된다. 30분 산책, 가벼운 스트레칭. 심박수가 100bpm을 넘지 않는 정도로.

격한 운동은 금물이다. HRV가 20%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강한 운동을 하면, 회복이 더 늦어진다. 하루 쉬었으면 2-3일에 끝날 회복이, 무리해서 운동하면 일주일 넘게 갈 수 있다.

낮잠의 힘.

가능하다면 20-30분 낮잠을 자자. 밤에 못 채운 깊은 수면과 REM 수면을 조금이라도 보충할 수 있다. 30분을 넘기면 깊은 수면에 빠져서 일어났을 때 더 멍해질 수 있으니 주의.


나만의 기준을 찾아라

사람마다 알코올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맥주 한 캔에도 크게 영향받고, 어떤 사람은 소주 반 병을 마셔도 다음 날 멀쩡하다.

그래서 '내 기준'을 찾는 게 중요하다.

2-3주 동안 기록해보자.

  1. 어젯밤 술을 마셨는지, 얼마나 마셨는지
  2. 오늘 아침 HRV가 얼마인지
  3. 오늘 컨디션이 어떤지 (1-10점으로 주관적 평가)

패턴이 보일 것이다.

"내가 맥주 2캔 넘게 마시면 다음 날 HRV가 20% 이상 떨어지는구나."

"소주 한 잔까지는 괜찮은데, 두 잔 넘어가면 다음 날 힘들구나."

이걸 알면 결정이 쉬워진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다음 날이라면, 오늘은 2캔 이하로 마셔야겠다. 내일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조금 더 마셔도 괜찮겠다.

HRV는 거짓말을 안 한다. 내 몸의 상태를 숫자로 정직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핵심은 술을 끊으라는 게 아니다.

알고 마시자는 것이다.

술 한 잔에도 몸은 반응한다.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 때로는 그 이상 동안 영향이 남는다. 8시간을 자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이걸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건 다르다.

오늘 저녁 회식이 있다면, 내일의 HRV를 생각해보자. 다음 주에 중요한 발표가 있다면, 그 전주 금요일 회식에서 3잔 리미트를 지켜보자.

당신의 몸은 매일 아침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HRV라는 숫자로.

내일 아침, 당신의 HRV는 뭐라고 말할까?


참고 자료

전문가 인터뷰

연구 및 데이터

  • JMIR Mental Health (2018): Acute Effect of Alcohol Intake on Cardiovascular Autonomic Regulation - 핀란드 대규모 연구
  • Oura Ring: How Alcohol Impacts Sleep - 수백만 사용자 데이터 분석
  • WHOOP: How Alcohol Affects the Body
  • Tasnim, S., et al. (2020). Effect of alcohol on nocturnal sleep and heart rate variability. Sleep Medicine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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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RV Works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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